드디어 정착한 회색볼펜, 그 험난한 여정기
하얀색 혹은 미색 노트에 검정색 글씨가 가득 차 있으면 어쩐지 눈이 좀 피로한 느낌이다.
모든 글자들이 나, 여기있어요! 라며 내 눈에 띄려고 안달 난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알게 된 회색 볼펜. 살짝 톤 다운 된 회색은 종이 가득 빽빽하게 쓰여있어도 편안하다.
눈에 띄는 글자가 없기에 꼭 보고 싶은 글자가 있으면 형광펜이나 다른 것들로 체크를 해두면 된다.
편안한 와중에 내가 보고 싶은 글자, 중요한 글자만 눈에 들이는 것이다.
나는 뭐든지 한번 정하면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 하나를 구매할 때 굉장히 심혈을 기울이는 편으로 '교복템', '인생템' 같은 단어를 좋아한다.
볼펜에서의 최애 인생템은 '유니 스타일핏 0.28mm'
굉장히 가느다란 글씨임에도 잉크의 흐름이 좋다. 뽑기에 실패해서 끝까지 쓰지 못하고 버린 것은
30개중에 1개? 2개? 분명 버린 기억이 있긴한데, 그게 굉장히 드물어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4색볼펜을 제일 좋아한다.

펜을 잡는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단순히 내 손이 커서 그런건지.
단색볼펜을 잡을 때보다 오동통한 바디를 잡을 때 손이 훨씬 더 편하다.
때마침 좋아하는 그린 컬러의 바디가 출시되기도 해서, 여러 통통이들 중에서도 4색 애용 중.
0.28도 좋고, 0.38도 좋고, 그립감도 좋고, 다 좋은데! 스타일핏에서 회색의 잉크가 없다.
그것이 최고 단점.. 그 많은 컬러 중에 왜 회색이 없나이까....ㅠㅠㅠ
스타일핏을 옆에 두고, 추가로 쓸 회색볼펜 찾기 시작.
검색하고 검색하고 검색하다 찾게 된 게 '사라사 빈티지 클립 볼펜'이다.
빈티지라는 단어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모든 컬러에 버터 한방울을 떨어뜨린 느낌의 잉크가 특징.
회색 역시 검정에 버터를 눅진하게 섞어만든 듯한 그런 그레이다.
0.3mm와 0.5mm 두가지가 있는데, 굵이 때문에 선명도 차이가 심하다.
0.5mm 는 진회색으로 보이고 0.3mm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회색.
잉크 흐름은 스타일핏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훌륭하다. 0.28 보다 0.3 이 더 굵으니깐 당연한 소리인가?

하지만 이 볼펜에도 정착할 순 없었는데, 얇은 단색볼펜이기 때문이다. 오동통한 바디를 좋아하는 나에게
단색바디는 너무 얇았다. 알루미늄으로 고급스럽게 만든 바디를 구매해보았지만... 그것 역시 내 손에
안성맞춤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게중심과 촉감은 너무나도 훌륭했지만.
나는 4색 볼펜이 길들여진 손이라오-!
아, 진짜 바디만 어떻게 안되나... 4색으로 만드는 방법 없나... 를 고민하며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독서모임 1기때 부터 썼는데, 지금은 4기가 끝나 있으니 최소 4개월은 단색으로 쓴 셈이다.
조금만 써도 손목이 얼얼하고 쑤셔서 쓰다 쉬다 쓰다 쉬다를 반복. 그 반복이 지칠 무렵이었다.
심심할 때 마다 네이버에 '회색볼펜'이라고 검색하곤 했는데, 그러다 국내 브랜드에서 만든 회색볼펜 발견!

'라이프앤피시스'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4색 젤펜. 0.4mm에 회색 리필심이 있다! 오예-!
...그러나... 바디 컬러가... 맘에 드는 게 없었다. 흑흑ㅠㅠㅠ
회색도 있고, 4색이라서 오동통한 바디도 있는데 맘에 드는 바디컬러가 없다니.
그래도 우선 구매했다. 제일 무난한 화이트 컬러로. 하지만 역시나 맘에 들진 않았다.
그래도 회색 리필심은 맘에 들었음!
사라사 빈티지 0.3mm 를 쓰다 0.4mm를 쓰는 거라 두꺼울까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두꺼운 티가 별로 안나고, 오히려 더 안정감이 느껴지는 두께랄까. 진짜 맘에 쏙!
바디 문제만 해결되면 '인생템'이 될텐데, 바디가 너무너무 아쉬워......서 슬프려는 찰나
눈에 들어온 또다른 애정템.

제트스트림 퓨어몰트 4색볼펜!
제트스트림의 리필심은 뭔가 잉크가 박한 느낌이라 자주 쓰진 않지만 바디 하나는 진짜 훌륭하다.
묵직한 무게감과 손이 닿는 부분에 걸쳐진 나무! 진짜 나무다. 그래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일품.
여기에 '라이프앤피시스'의 리필심이 안성맞춤으로 딱 들어간다.
정확히 따지자면 0.001mm의 차이가 있지만(버니어로 측정해봄) 실사용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
회색볼펜심은 본래 자기의 바디인 라이프앤피시스에 있을 때보다,
제트스트림 퓨어몰트에 들어가 있을 때 유격도 없고 더 조용하다.
진짜. 이 두개가 딱- 맞았을 때 그 기쁨이란!
드디어 회색볼펜도 인생템 완성! 싱나~ 완전 싱나~
아, 컬러는 라이프앤피시스가 사라사 빈티지 클립보다 조금 더 연하다.
사라사는 블랙에서 회색으로 톤다운시킨 느낌이라면 라이프는 흰색에서 회색을 끌어올린 느낌.
둘 다 다른 매력으로 예쁘다. 맘에 듬!!
스타일핏에서 회색볼펜이 나오던가, 사라사에서 4색볼펜이 나올 때까지
우선은 제트스트림 퓨어몰트 + 라이프앤피시스 0.4mm 젤펜 조합으로 쭉 사용할 예정.
과장 조금 보태서 반년만에 회색볼펜을 정착하게 되서 매우 기쁘다.
진짜-! 엄청 신나!!

